알림마당

  • 공지사항
  • 정보공유
  • 보도자료
  • 언론보도
  • 채용공고
  • 사진·영상

공지사항

  • 알림마당
  • 공지사항
공지사항 보기
제목 영혼은 복제되지 않는다 2006-06-21
작성자 관리자 hit : 2907
첨부파일 첨부된 화일이 없습니다.  
[한국능력개발연구회 소식지 삶과 시랑과 죽음 2006년 5,6 월호 중에서]

영혼은 복제되지 않는다,

최재천ㆍ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지금까지 늘 그래 왔듯이 DNA는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 복제의 길을 걸을 것이다. DNA가 이룩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들 중의 하나가 인간의 두뇌일 것이다. 인간의 뇌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창세기 22장 17절) 만들어주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그 뇌가 이제 막 섹스 없이도 유전자를 다량으로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DNA의 꿈을 대신 실현하고 있다. DNA는 지금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이 그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걸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종교학자 테드 피터스(Ted Peters)는 유전자형(genotype)으로부터 표현형(phenotype)이 만들어지듯 DNA로부터 우리의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연과학자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물질주의적 환원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다음 생명체로 전해지는 것은 오로지 DNA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묘한 화학물질 안에 생명의 모든 디자인이 다 들어 있다. 인간의 정신은 결국 물질(the physical)의 형이상학적 표현(metaphysical expression)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영혼을 얻는다. 하지만 생물학자인 나는 영혼도 결국 하나의 생물학적 현상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영혼이 DNA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전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도 절대 똑같은 영혼을 갖지 않는다.

생물학은 유전학이 아니다. 생물학은 유전학 외에도 환경과의 관계를 다루는 생태학도 포함한다.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동일할 지 모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절대로 동일할 수 없다. 복제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은 절대로 복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영혼이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위에 세상을 살며 터득한 온갖 지식들이 한데 어울려 엮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복제인간도 그 나름의 영혼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 혹자는 필요에 의해 윤리의 기준을 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리 역시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온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신문만 펼쳐보아도 우리들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비정한 짐승들인가 쉽게 알 수 있지만 굳이 도덕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도덕을 운운하며 도덕적으로 살기를 열망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도덕적이길 원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왜 도덕적이길 원하는가? 도덕적인 사람들이 부도덕한 사람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사람들이 부도덕한 사람들보다 덜 성공적이어서 자식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면 우리를 도덕적으로 만들어주는 유전자는 지금 우리 몸 속에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든 유전자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많은 자손을 남기게 해주었기에 도덕유전자가 지금도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윤리란 사회가 있기에 존재하는 인간의 특성이다. 혼자 사는데 윤리가 필요할 리 없다. 도덕과 윤리는 사회적 평판을 가늠하는 척도로 마련된 일종의 규범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아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낯선 사람에게는 냉담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그런 것 같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동방예의지국이지만 모르는 이들을 대할 때면 금새 동방무례지국이 된다. 그 옛날 서로 아무개 집 아무개로 알고 지낼 때와는 달리 세상이 점차 익명사회로 변하며 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늘 새로 펼쳐지는 시대를 예전에 비해 비도덕적이라 평가하며 살아왔다. 우리 부모세대가 우리더러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탓했고 우리가 또 우리 자식세대를 못마땅해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 옛날 이웃 부족이 잠자는 사이 그들을 죽이고 겁탈하던 때가 지금보다 더 도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새 시대에 걸맞는 윤리관이 미처 확립되지 않은 데서 오는 괴리일 뿐이다. 인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회만 있으면 부도덕해질 수 있고 남에게는 되도록 도덕적으로 보이길 원하는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윤리기준을 마련하는 일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새 포도주는 마땅히 새 병에 담아야 한다. 과학의 발달이 우리에게 너무 갑작스레 많은 숙제들을 던져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지를 앞세운 두려움과 뻔히 보이는 것을 애써 부정하려는 어리석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문제의 과학적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는 일이 우선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윤리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그 새로운 규범에 따르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최근 과학의 발달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많은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두려움과 어리석음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든 공통적으로 윤리는 종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윤리와 종교도 과학의 범주에 들어왔다.

기독교 시인 오든(W. H. Auden)이 말했듯이 과학 없이는 평등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윤리가 인간적이고 합리적이려면 과학과 종교가 함께 일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는 과학과 종교에 고루 달려 있다고 물리학자 다이슨(Freeman Dyson)은 강조한다. 미국 작가 허바드(Elbert Green Hubbard, 1856-1915)는 이런 말을 남겼다. “교회는 죄인들을 구원하지만 과학은 죄인이 만들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 4월17일 강의 중에서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역경지수(AQ)를 높혀라!! 20060619000000
다음글 국운은 천명과 인심에 달린 것. 20060626000000



개인정보취급방침 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오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