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사고

미국 외교사에 참담한 실패로 기록된 피그스만(灣) 침공작전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쿠바 출신 망명자들을 침투시켜 카스트로가 세운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작전의 요체였다. 내부 봉기인 양 꾸며 혹 실패해도 미국과 무관하다고 잡아떼면 된다는 순진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1400명의 망명자들은 상륙하기 무섭게 중무장한 쿠바 포병대의 먹이 신세가 됐고, 케네디는 국내외의 거센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백악관 특보를 지낸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훗날 회고록에서 “말도 안 되는 작전을 당장 그만두라고 경고하고 싶었지만 회의 분위기에 눌려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모두가 ‘예’ 할 때 혼자서 ‘아니오’를 외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 없이 한 목소리에 끌려가다 무모한 실수를 저지르는 현상을 ‘집단사고(groupthink)’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베트남전 개입,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등 집단사고가 부른 대재앙은 한둘이 아니다.

미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저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에서 결속을 강요하는 집단 분위기, 외부 의견의 철저한 차단, 긴급 사태로 인한 위기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개 토론은 물 건너가고 목소리 큰 일부의 주장에 집단 전체가 휩쓸리게 된다는 거다.

끔찍한 집단사고의 함정을 피해갈 길은 없는 걸까.

피그스만 침공의 실패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은 케네디가 뒤이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해법을 보여준다.

그는 회의마다 다수의 외부 전문가를 불러 조언을 경청했고, 참모들을 그룹별로 토론시켜 내부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막았다.

또 자기 말 한마디에 전체가 휘둘리지 않도록 일부러 회의에 슬쩍 빠지기도 했다.

케네디가 소련에 강온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험을 막아낼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노력이 숨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도 실수를 인정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그런 용기와 지혜 아닐까.

중앙일보 2009.8.11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