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지구촌 불우이웃에 온정을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국회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투표함을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하루 종일 TV를 장식했다. 경제규모 세계 12위라는 나라가 언제까지 저런 모습으로 세계의 구경거리가 돼야 하는지 안타깝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세계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나라가 또 있을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유엔이 연합군을 결성해 피를 흘려주었고, 전쟁 후에는 구호물자와 약 120억달러에 달하는 각종 유.무상 차관으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거름이 되게 했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옥수수 식빵과 우유급식.채변봉투.회충약.결핵실, 그리고 뜻도 모르고 외치던 잘 살아 보세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기억할 것이다. 대개는 각국이 보낸 원조금으로 이뤄진 사업들로 이제는 우리나라 비정부기구(NGO)들이 최빈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세계 100여개 국에서 1억명을 돕는 월드비전도 사실은 1950년 우리나라 과부와 고아를 돕기 위해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얼스와 한경직 목사가 처음 설립한 단체다. 원조를 위해 들어온 단체의 도움을 받아 가난에서 벗어나고 그 단체가 다시 모금을 해 원조하는 이런 예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지금은 굿네이버스.한민족복지재단.지구촌나눔운동 등의 자생단체까지 합해 39개의 우리 단체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정부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외교통상부 산하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해 10여년간 20억달러가량 원조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후에는 NGO와 협력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정부가 1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하고 그 중에 50만달러를 NGO에 주면 NGO는 자체적으로 모금한 돈 250만달러를 합해 현지에 가서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함께 직접 사업을 한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더욱 적극적이어서 지난해 150만달러의 정부지원금을 받은 민간 단체들은 민간 모금액을 합해 약 800만달러어치의 사업을 시행했다. 국군이 파병되는 올해는 350만달러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약 1500만달러에 달하는 사업을 할 계획이다.

과거 1인당 국민총생산(GNP) 3만달러에 달하던 이라크가 불안한 정치 상황과 전쟁 등으로 불과 10여년 만에 원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가엾은 국민을 양산해냈다. 이라크는 엄청난 양의 석유를 보유해 기간시설 마련을 위한 약간의 도움이 있으면 금방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나라다. 이라크 국민을 위한 재건사업이 성공하도록 돕는 것은 원조를 하는 우리나라나 원조를 받는 이라크 모두 윈-윈하는 뜻 깊은 기회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정부와 민간단체의 이런 활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공적개발자금(ODA)의 부담비율은 GNP의 0.06%로 OECD 권고치인 0.6%에는 10배나 부족하다. OECD 가입국가 평균치인 0.22%에도 밑돈다. ODA의 혜택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나라, ODA의 성공사례인 나라로서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재벌들을 욕하고 인색한 부자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우리 자신이 세계 속에서는 바로 그 인색한 부자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음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주 등의 선진국에서 중국.인도.동유럽 국가 등 개발도상국 내지는 최빈국으로 옮아 간 지 오래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서 당대에 부를 일군 성공모델로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부러운 시선이 질시로 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빈곤 퇴치라는 지적 재산을 함께 나누는 나라가 될 수 있게끔 각자 쓸 것을 조금 아껴 세계인과 나누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윤현봉 한국해외원조단체협의회 사무총장

.
2004.03.17 18:36 입력 2004.03.18 08:36 수정